빌리 그래함 목사 90회 생일 맞아
▲ 90회 생신을 맞은 빌리 그래함.(사진 출처: Steve Dixon)     ©크리스찬투데이
'세기의 전도자', '역대 대통령들의 채플린'으로 불리는 빌리 그래함의 90회 생일을 맞아 축하의 인사가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스캐럴라이너의 몬트리트 산기슭에 거주하는 본인은 가족들, 스태프 등 수십명 측근에 둘러싸여 평소 좋아하는 코코넛, 파운드 케익 두 가지를 놓고 조촐한 파티를 치렀다. 

이에 앞서 전국의 유명 복음가수들이 축하비디오를 찍어 보냈다. 공식 생일 파티는 그 다음주 다른 스태프와 함께 재차 가졌다. 90회 생일을 앞둔 지난 10월엔 영화 '빌리의 초기'가 전국에서 개봉됐고 두 손자들이 '초청-빌리 그래함과 하나님이 어루만진 삶들'이란 책도 펴냈다.  

지난 약70년간 185개국 이상의 크고작은 스태디엄 사이즈 집회를 주최해온 그래함이 현재는 여러 해 앓아온 파킨슨병으로 청각과 시각이 약화돼 신문은 헤드라인을 읽는 정도. 간병팀이 그의 곁에서 돌보면서 주중 몇 차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방문을 맞고 있다. 

그의 사실상 후계자인 장남 프랭클린 그래함(현 빌리그래함전도협회 대표)은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장수하실 줄은 아무도 생각치 못했을 것"이라며 "아픈 곳은 많지만 아직 퍽 건강한 편"이라고 전한다. 

빌리는 현재 하루 세 끼니와 낮잠, 오전/오후 휴식, 뉴스시청 등의 일상을 보낸다. 그는 자신이 "95살까지는 살 것"이라고 딸 지지 그래함 포어맨에게 희망을 표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지난 64년을 함께 한 아내 룻 벨 그래함을 앞서 보낸 뒤 깊은 슬픔에 빠졌으나 결국 극복했다. 

그는 이번 대선 때 부재자 투표를 하기도 하는 등 여전히 정치사회에 관심과 열의를 나타냈다. 빌 레너드 교수(웨이크포레스트대학교신학대학원/교회사)는 "그는 유례없는 미국 신교의 대표 채플린"이라며 "그는 교파를 초월했고 출석자들과 탐구자들의 경계선도 허물고 다리를 놨다"고 평가.

그래함은 본래 샬럿의 농장에서 자라 휘튼칼리지에서 아내를 만났고 1934년 전도사역을 결심한다. 그는 해리 트루먼으로부터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비공식 채플린 노릇을 했다. 세계교계의 에큐메니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그래함은 정치-종교 야합에 기여했다거나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인 1970년대 대 유대계 문제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교계 일각에서는 흔히 '근본주의자'들로 치부되는 텍스 마즈, 프리츠 스프링마이어, 캐티 번즈 박사 등 비평가들로부터는 "반평생 프리메이슨과 친근한 삶을 살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그래함은 프리메이슨(33도)이자 메이슨 신전 채플린으로 유명했던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힘'의 저자, 노먼 빈센트 필 목사('가이드포스트' 창간자)의 그 제자인 로버트 슐러(1세)와 절친한 친구로 지냈고, 역시 프리메이슨 명사였던 포레스트 해거드 목사의 <성직자들과 크래프트(프리메이슨을 상징)>란 책에는 청소년 프리메이슨단 '드몰레이'를 적극 장려한 그의 추천사도 수록돼 있다. 

그래함은 특히 1940년대 뉴욕전도대회 당시 진보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대거 연단에 올려 비난을 사기도 했다. 당시 결신자의 일부는 필 목사가 사역하던 마블칼리지에잇 처치에, 일부는 역시 극진보주의 교회인 리버사이드 처치에 보냈다. 

그래엄은 또 할리우드 불러바드 대로 선상에 자신의 기념 '별'을 갖고 있다. 그래함은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20세기 최고의 영적 지도자"라고 극찬하거나 교황의 사후 '천국 입장'을 자신의 천국 입장보다 더 장담하고 테레사 수녀에게 찬사를 던지는 등 친카톨릭 성향을 유지해 왔다. 

그래함의 이런 얼룩진 장/단의 삶은 겉으로만 '명사'와 '위인'으로 알려진 인사에 대한 일방적 찬사가 아니라 올곧은 시각으로 바로 조명돼야 한다는 일각의 평가가 부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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